순종하고 근면하며 표준화된 실행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인간보다 수만 배 더 잘하는 일이다.
최근 정책포털에 기고되어 교육계의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 한 칼럼은 오늘날 학교의 자화상을 ‘탄광의 카나리아’에 비유했다. 산업사회의 유산인 암기식·주입식 교육과 서열 중심의 입시는 아이들을 AI에게 가장 먼저 대체될 존재로 길러내고 있다는 경고다.
특히 이 문제는 단순한 기술 수용의 차원을 넘어, AI 시대에 필요한 철학과 윤리를 가르치는 인성교육의 부재와 직결된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다움을 지탱하는 철학적 사유, 윤리적 판단력, 타인과의 공감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귀중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우리는 인성교육과 철학·윤리의 부재라는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현행 학교 교육은 여전히 성실성, 정확성, 규율이라는 산업시대의 잣대에 머물러 있다. 생성형 AI의 확산은 지식의 양보다 그 지식을 어떻게 다루고, 어떤 가치관으로 활용할 것인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비판적 검증과 철학적 사유 역시 실종되고 있다. AI가 쏟아내는 정보와 알고리즘의 오류를 맹신하지 않고, 그것의 사회적·윤리적 함의를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능력은 철학과 윤리 교육에서 출발한다.
또한 공감과 협업의 인성을 길러야 한다. AI는 패턴을 학습할 수 있지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은 오직 인간의 인성적 역량에 속한다. 그러나 현재의 입시 경쟁 구조 속에서 윤리와 철학은 단순 암기 과목으로 전락하거나, 입시 점수를 위한 수단으로 소비될 뿐 진정한 의미의 성찰과 인성교육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도입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원래 암기식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학생의 자기주도성, 창의성, 공동체 역량(인성)을 입체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현장의 실상은 냉혹하다.
본래의 취지와 달리 학종 역시 명문대 진학을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입시 기술로 변질되었다. 협업, 탐구, 토론 중심의 과정 중심 평가는 자소서 글감 만들기나 스펙 쌓기 경쟁으로 오염되었고, 학생들은 진정한 호기심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 대신 정답에 수렴하는 안전한 활동만을 강요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학 서열화라는 강력한 관문 앞에서 학생부종합전형 역시 암기식 입시의 연장선으로 흡수되며, 아이들의 고유한 창의성과 윤리적 상상력을 갉아먹는 도구가 되고 있다.
AI 시대에 맞는 인성교육과 참된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교실 내부의 미봉책을 넘어, 입시 구조와 사회적 인프라를 동시에 손봐야 한다.
무엇보다 실패를 허용하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 떨어지면 곧바로 절벽으로 이어지는 사회에서는 아무도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학생들과 학부모가 서열과 정답 중심의 입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기초적인 사회 안전망과 평생학습 인프라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입시 경쟁의 강도는 낮아지고, 진정한 의미의 자기주도적 탐구가 가능해진다.
또한 학생부종합전형의 평가 철학 역시 전환되어야 한다. 지식의 정답률을 채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이 보여준 과정 속의 윤리적 태도와 철학적 사유를 깊이 있게 평가해야 한다.
결과를 얼마나 잘 냈는가가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어떤 질문을 던졌고, AI가 제공한 정보 속에서 어떤 윤리적 모순을 발견했으며, 동료들과 어떻게 협업하고 갈등을 조정했는지를 기록해야 한다. 정답을 맞힌 기록보다 가설을 세우고 실패한 뒤 이를 성찰하고 회복해 낸 과정, 즉 회복탄력성이 더 높게 평가받는 입학 제도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고도의 암기력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철학과 더불어 살아가는 윤리적 인성이다.
대한민국 교육이 가장 먼저 대체될 인간의 양산을 멈추고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내려면 인간 중심의 종합적 성장 평가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그 개혁은 반드시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단단한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토대 위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