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민들레 하얀 민들레꽃에 하얀 나비 사랑해 입맞추니 하얀 홀씨되어 날아가네 밤새 바람 타고 동틀녁에 들에 내리니 여기가 어디메냐 고향이 어디메냐 바람은 지나갔어라 언덕 넘고 물 건너 떠돌이 민들레 내린 데가 고향이어라
박재형 저 비라도 오면 좋겠다. 정신이 번쩍 들게, 소나기가 내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렇게 답답한 마음 쏴악 씻어 갔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눈을 뜨면 문득 한 숨이 나오는 그런 날이 있읍니다. 좋은 친구인데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하고 혼자 삭이다 가슴만 쓸어내리는 그런 날...... 친구를 만나 지금까지 그냥 가슴만 저려오는 알 수 없는 그런 혼돈스런 날. 할 일은 많은데 일손을 놓은 체 하루 종일 생각에 잠겨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던 그런 날. 이제 모두 내 곁을 떠나버리고 기억만이 내 곁을 감싸면, 정말 하고 싶던 이야기 전하지 못한 체 가슴에 담아버린 사연들 등등...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 그렇게 힘만 듭니다. 이건 내 모습이 아닌데 정말 아닌데...... 이런 마음속의 생각이 마음대로 해결되지 않고, 가슴 속에 숨긴 마음 꼭꼭 접은 체 눈동자 빨갛게 노을에 물들어 나 아닌 나를 원망하는 것 같읍니다. 그리고 한편 날 이해한다고 믿는다고.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보다 야속한 마음보다 아직도 함께 했던 시간의 무게가 너무나 커서, 난 아직도 그대를 잊을 수가 없읍니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변하고 때때마다 가
박재 형 저 70대는 얼굴에 비치는 무표정한 순종적인 모습과 살아온 인생의 회한들을 지워내며 이제 비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쓸쓸하기도 하지만 지금 살아있음이 느껴지는 마음에 감사하고 싶다. 어떤 이는 70대가 되면 신체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기라고 말한다. 우선 몸의 통증이 잦아지고 피부가 늙어가는게 뚜렷하고 신체가 줄어들고 기운도 약해져 쉬이 피로해진다. 또 살아가면서 느끼는 의욕과 쟁취를 통한 성취감의 의지가 약해져 쉬 포기하는 나이다. 그래서 이 나이에는 이미 살아온 날들 동안의 좋은 마무리를 생각한다. 우선 내 신체의 고통을 통해서 자식에게 부담을 맡기고 싶지 않고 남은 유산을 통해서 자녀들 간의 갈등을 없었으면 하고 또 고민한다. 이렇게 ‘너도 내 나이가 되어봐라’를 시작하며 삶을 잘 정리하기 위한 생각들을 가지는 나이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일이 아니면 쉽게 받아들이거나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삶이란 ‘몸이 깨닫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추억은 후회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단정한다. 즉 지나간 일은 언제나 그리워한다는 말에도 일련의 아쉬움이나 후회가 깃들어 있다. 결국 삶이란 영역을 돌이켜 보면 그 모두가
박재형 저 우리 동네 호수공원을 산책하다 호수를 바라보며 무심히 생각에 잠겨 걷고 있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몇 번인가 발 끝에 밟히고, 소매 끝에 스치는 인연이 닿기도 하고, 돌부리에 걸려 몇 번인가 넘어지기도 하고, 몇 번인가는 발 끝에 채이기도 하면서 걸어간다. 그러다 보면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가슴 한쪽에 훵하니 가을 같은 바람만 스치운다. 숨소리조차 들리는 오솔길을 홀로 걸으며 숲속 벤치에 앉아 바스락 낙엽이 구르는 소리에 혼자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명상에 잠기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숲이 그냥 내게로 온다. 구름이 내게로 오고, 그리움도 내게로 온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겨우내 마른가지에 싹이 움트던 지난 봄, 우리의 갈증을 풀어주던 빗소리. 내리쬐던 불볕도 마다 않고 지켜내던 지난 여름, 내 안의 상처를 감싸안은 시원한 강바람. 자기의 모든 열정을 태워 열매를 맺는 가을, 추억을 흔들던 억새풀과 노을빛. 이렇게 하늘이 높은 가을날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를 낙엽에 담아 내게 보내 준다면 그래서 내가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을 타는 냄새를 좋아하는 당신, 가을 바람이 날 당신에게 데려다 준다면 가을을 잔에 타서 전하고 싶다
떠돌이 민들레 하얀 민들레꽃에 하얀 나비 사랑해 입맞추니 하얀 홀씨되어 날아가네 밤새 바람 타고 동틀녁에 들에 내리니 여기가 어디메냐 고향이 어디메냐 바람은 지나갔어라 언덕 넘고 물 건너 떠돌이 민들레 내린 데가 고향이어라
절영지회 (絶纓之會) 남의 잘못을 탓하지 마라! 남의 단점을 보지도 마라! 나의 단점을 정당화하지 마라! 오로지 나의 단점을 고치기에 힘쓰라! 위의 말은 경남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경내 곳곳에, 걸려 있는 검은 나무판의 경구 중 하나입니다. 춘추시대 중국 초나라 장왕의 일화에서 만들어진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장왕이 나라의 큰 난을 평정한 후, 공을 세운 신하들을 치하하기 위해서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신하들을 아끼던 장왕은, 이 연회에서 자신의 후궁들이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연회가 한참 진행되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연회장의 촛불들이 일순간에 꺼졌습니다. 그 순간 한 여인의 비명이, 연회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 여인이, 앙칼진 목소리로 크게 외쳤습니다. 어둠을 틈타서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을 만졌고, 자신이 그자의 갓끈을 뜯어 두었으니, 장왕께서는 어서 불을 켜서 그 무엄한 자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신의 후궁을 희롱한 무례한 신하가 괘씸하고, 자신의 위엄이 희롱당한 것 같은 노여운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 장왕은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 자리는 내가 아끼는 이들의
*놀라운 선교 비사* 지금부터 100년 전 한 젊은 선교사 부부가 미국 선교부에서 한국으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이 젊은 선교사 부부는 충남 공주를 선교 기반으로 하여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공주에서 첫 아들을 낳았는데 첫 아들의 이름을 한국의 광복을 기원하면서 한국식 이름을 우광복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올리브와 로저라는 두 딸을 낳았습니다. 1906년 2월 논산지방 부흥회를 인도하고 돌아오다가 비를 피해 상여간에서 잠시 쉬었는데 바로 전날 장티푸스로 죽은 사람을 장례하고 그 장례용품을 보관해 두었기 때문에 선교사님이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졸지에 선교사님 부인은 과부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놀라운 사실은 2년후 선교사님의 부인이 자녀를 데리고 다시 한국 공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공주에 큰 교회들을 세우는데 기여를 하고 47년간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두 딸이 풍토병에 걸려 죽었는데 우광복의 여동생 올리브는 11살에 죽어서 공주땅 영면동산에 묻힙니다. 우광복은 공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나오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나오게됩니다. 그때가 바로 일제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되어 하지
오솔길 아이야 오솔길로 가자 나란히 걷는 오솔길 나팔꽃이 활짝 반기네요 고불고불 오솔길에는 옛날이 흐르네요 오솔길에 마을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