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18일 배재고와 세화고 학교법인이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낸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에 대한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서울시교육청이 중대하게 변경된 평가 기준을 소급 적용한 것은 자사고 재지정 제도의 본질에 어긋난다”며 “이는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위법한 행정 조치”라고 밝혔다.
앞서 2019년 7월 서울시교육청(조희연 교육감)은 배재·세화고를 비롯해 자사고 8곳(배재고, 세화고, 경희고, 숭문고, 이대부고, 신일고, 중앙고, 한대부고)에 대해 “운영 성과 평가 결과 기준 점수에 미달했다”며 자사고 지정 취소를 결정했고, 교육부는 이를 승인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 재지정 기준 점수를 임의적으로 60점에서 70점으로 높이는 등의 평가계획을 2018년 12월에 내놓고, 평가 대상 기간인 2015∼2019학년도 전체로 소급 적용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특별법이 아닌 경우에 ‘소급불적용 원칙’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에 반발해 자사고들은 소송을 제기했으며, 이번 판결로 배재고와 세화고는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되며, 이번 판결로 서울 숭문고·신일고 등 1심 판결을 앞둔 서울 소재 자사고 6곳도 승소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다만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정부는 2025년에 자사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할 방침이다.
서울시교육청은 18일 서울행정법원 판결 직후 “고교 교육 정상화에 역행하는 퇴행적 판결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과 함께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교육 정책이고, 고교 교육 정상화를 요구하는 시민 열망을 담은 것”이라 주장했으나, 교육계에선 “무리하게 ‘자사고 죽이기’에 나섰다가 위법 판단을 받았는데 법원 판결을 퇴행적이라고 비난한 것은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왔다.
2018년 말 교육부와 일부 시·도교육청들은 자사고 평가 지표 표준안을 공동 개발해 재지정 기준 점수를 ’60점 이상'에서 ’70점 이상'으로 높이고, 교육청 감사로 감점할 수 있는 점수를 3점에서 12점으로 대폭 늘렸다. 이는 자사고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교육부와 일부 교육감들이 자사고를 ‘일반고 황폐화’의 원인으로 객관적 근거 없이 지목하면서 평가 기준을 강화했다.
실제로 작의적으로 만든 서울시교육청의 평가 결과 서울시 자사고 13곳 중 8곳이 총점 70점에 미달해 자사고 지정이 취소됐다.
재판부는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의 지정 목적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재량 지표를 설정하고 자사고에 불리한 평가 요소를 넣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시교육청은 ‘학부모 학교 교육 참여 확대 및 지역 사회와의 협력’을 지표로 제시하고 학부모 동아리 활성화 등 평가 요소 7개를 넣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자사고 지정 목적 달성 여부와 관련성이 높다고 보기 어려울뿐더러, 오히려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서울형 혁신학교 운영 기본계획’과 흡사한 내용”이라고 했다.
특히,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교육청은 기존에 자사고가 높은 점수를 받아온 ‘학교 만족도’ 평가 영역은 배점을 15점에서 8점으로 대폭 축소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객관적 기준 없이)자의적으로 평가 기준을 수립한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자사고를 평가한다면서 엉뚱한 평가 기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이후 1심에서 승소한 고진영 배재고 교장은 “이번 판결로 ‘자사고 탈락한 학교’라는 오명을 벗길 기대한다”며 “서울시교육청이 학교를 상대로 항소해 혈세를 낭비하고 행정력을 낭비해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했다. 오세목 자사고공동체연합 대표는 “교육청의 위법하고 부당한 평가와 관련된 당사자들의 직권 남용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지난 2019년 교육부가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이란 명목으로 전국 자사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2025년 일반고로 전부 전환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으나, 지정 폐지된 자사고의 앞날은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수도권 자사고와 국제고 24개 학교법인은 정부가 이 학교들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자사고 측은 “교육부 시행령은 헌법상 보장된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고, 교육에 관한 것은 법률로 정하도록 한 교육제도의 법정주의에도 위배된다”며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을 위해 정부가 자사고 설립을 권장했다가 이제 와서 폐지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신뢰 보호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사고와 함께 일반고 일괄 전환 대상이 된 전국 사립 외고 법인과 비수도권 자사고 법인도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각각 청구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2022년 정도에 나올 거란 전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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