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작
가을비 오는날 낙엽을 밟으며 걸어본 적이 있는가?
잊었던 얼굴이 떠오르고, 다정한 그대의 말이 귓가를 속삭인다
갈색 눈동자는 얼굴에 닿은 작은 떨림이
내 가슴으로 번져오면 나는 수첩을 뒤져 전화를 하고 싶어진다.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을 이어주는 빗소리,
그리움을 물들여놓고 내 마음에 파고들어
일체의 고민을 불식시킨 빗소리만 익숙한 파동으로
내게 전해주었다.
낙엽이 떨어진다.
자연의 모든 색이 씻겨 가버린 날.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보지만
낙엽위에 서있는 나는 온 길 알 수 없고 갈 길 알 수 없는 데
어디로 가야 할까?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는 분명한 듯 한데
아닌 듯 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멀어지기도 하는
망각의 시간으로 달린다.
오늘 가을비와 낙엽의 생각은 잔뜩 흐렸던 하늘에 비를 뿌리고
비바람을 탓하는 낙엽은 납작 엎드려 당신 가슴에
내 마음을 내려 놓았던 것처럼
찬바람에 뒤척이던 시간을 내려 놓았다.
비는 마음의 부스러기인 듯 내 그리움을 적셔가고
어둠은 슬며시 모든 것을 감춰버린다.
내리는 가을비에 고독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아리한 기억 마저도 조용히 벗어내고 겨울맞이를 하려는가 보다.
내 마음에 그리움으로 전해오고 엉거주춤 발 저린 사람처럼
그냥 기다림으로 채워야 하는 가을비에 미처 비우지 못한 기억들이
낙엽 속에 묻혀가는 것을 바라보며 안타가워하는 마음은
흔들리는 사랑처럼,
부는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기억 속에 헤집다
차갑게 저물어 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