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광화문시대 대통령이 되어 국민과 가까운 곳에 있겠습니다...” 드디어 3년하고도 얼추 다섯 달 만에 ‘대토론회’가 그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쾌청한 가을, ‘하늘이 열린 날’이었다. 주제는 ‘뛔국산(産) 돌림병 방역을 위한 효과적 방안’이었다고 했다. 그 ‘뛔국산 돌림병’이 당초부터 뛔국을 싫어하는 인간들과 태극기·성조기만 따라다니는 속성(屬性)이 있었는지라, 이번 ‘대토론회’도 세심하고 강력한 배려·조치가 있었단다. 뛔국을 싫어하면서 태극기·성조기를 들고 설칠 ‘국민’들은 참석할 수 없었다. 믿을 만한 경찰들만 1만여 명씩이나 자리를 메웠다고... 그래도 혹시 토론회장를 돌림병이 불시에 기습적으로 덮칠지 모르기 때문에 버스로 튼튼한 성(城)을 쌓았다고 했다. 토론회는 위의 말씀 약속도 있고 해서 ‘문주주의(文主主義)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특히나 최근에 뛔국을 원쑤(怨讐)로 삼고 있는 저 멀리 양키나라 ‘하얀집’의 세입
지난 일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살 수는 없다. ‘인간은 망각(忘却)의 동물’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무려 7개월여가 지났음에도 눈에 선한 사진 한 컷이 있다. 주위에 많은 이들도 그렇다고 했다. ‘우한폐렴’(武漢肺炎)으로 이 나라에서 ‘또 사망자’가 발생했던 지난 2월 어느 날... 그 무슨 ‘기생충’ 파티에서 ‘짜파구리’를 맛나게 드신 후, 얼굴 찢어지고 목이 젖혀질 정도로 큰 웃음을 짓는 사진이 돌아다녔다. 그날 이후에 현재까지 자랑은 뻔질나게 해대고 있다. 그 무슨 ‘K-방역’을 주어 섬기시면서... 하지만 그 돌림병으로 잃은 390여 목숨들에 대해서는 한마디 애도의 표시도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당연하다고? 저잣거리에서는 이렇게 수군거린단다. “자랑질에 아무 도움이 되질 않지. 더군다나 죽은 자는 ‘표’(票)가 될 수 없고말고...” 그리고 엊그제 아무개 신문의 기사 토막들이다. “문 대통령은 공무원이 실종된 지난 22일 오후 6시 30분 첫 서면 보고를 받았다... 총격이나 시신 훼손은 확인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군은 4시간 뒤인 22일 밤 10시 30분 총격 및 시신훼손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23일 오전 8시 30분 첫 대
‘청년의 날’ 기념사에 37번을 담았다지만, ‘엄마 찬스’ 묵인하매, 공염불될 지경인데... ‘권력기관 개혁’의 본질은 정녕 무엇일까?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며, 다 이루지 못할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입니다... 정부는 ‘공정’에 대한 청년들의 높은 요구를 절감하고 있으며, 반드시 이에 부응할 것입니다. 병역 비리, 탈세 조사, 스포츠계 폭력근절 노력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청년의 눈높이에서 ‘공정’이 새롭게 구축되려면 채용, 교육, 병역, 사회, 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체감되어야 합니다...” ‘제1회 청년의 날’ 기념행사가 있었다고 했다. 그 기념사에 ‘공정’이 37번씩이나 언급됐다고 여러 신문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이 시대, 즉 ‘촛불정권’의 ‘공정’... 요즈음 흔히 쓰는 표현을 빌자면 ‘C[candlelight]-공정’의 의미를 시장바닥에서는 두 문장으로 함축(含蓄)하고 있단다. 어떤 것이 더 적확(的確)한지는 ‘읽는 이’들에 답을 구해보자. ① 조국스럽다. ② 추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올해가 첫 번째라는 ‘청년의 날’의 기념사에 대해서 어찌 평가하고 있을까도 궁금해진다. 그 기념사를 낭독한 분께서 직
엊그제 아무개 신문에 북녘 ‘최고 돈엄(豚嚴)’의 수해(水害) 현장 방문 사진이 보도됐다. 이른바 ‘난닝구’ 차림이었다. 인민들을 향한 신파극에 불과하겠지만, 그것 말고도 저절로 실소(失笑)가 따라 나왔다. 그 뒤룩한 몸뚱이에 맞으려면 북녘에서 제일 큰 사이즈의 ‘난닝구’여야 할 거 같은데... 북녘에선 과연 그런 걸 어디서 만들까? 만들기는 하나? 아무튼... ‘난닝구’만 입고 설치든, 실소를 머금게 하던 간에 그 녀석이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의 ‘국민’과 ‘국민의 군대’가 싸워 무찔러야 하는 제 1의 적(敵), 주적(主敵)의 수괴(首魁)인 것만은 틀림없지 않은가.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2년 전(前) 이맘때쯤 남-북녘 사이에 그 무슨 ‘9·19 군사분야 남북합의서’라는 게 채택되었다. 하지만 그 합의서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자마자 이미 ‘불평등’인 것이 드러났다. 이를 테면...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는 조항에서, 그 앞부분의 ‘남과 북은...’ 대신에 ‘남은...’으로만 표기해야 실제 상황에 걸맞는 꼬락서니가
“코로나 유행이 억제되지 않고 하루 300명 이상이 지속적으로 확진되고 있다... 현재 유행 상황이 계속된다면 다음 주에는 하루에 800∼2000명까지 확진자가 늘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 지난 8월 마지막 주말의 아무개 신문 기사 토막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의 말씀이라고 전했다. 이후 9월 들어서는 이런 내용의 기사도 눈에 띈다.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이날 6시 현재 코로나 누적 확진자는 2만 90명으로 2만명을 넘어섰다... [9월] 1일 질본이 집계한 지난 2주간 깜깜이 환자 비율은 24.3%로 지난달 30일 이후 사흘 연속 최고치를 고쳐 썼다...” 돌림병 전문가가 아닌 관계로 그 무슨 평가나 분석을 할 처지는 못 된다. 단지 등골이 오싹해진다고나 할까. 그 누구라도 겁을 먹지 않기가 힘들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돌림병이 원산지(原産地) 또는 원적지(原籍地)의 티를 내고, 값을 단단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역시 뛔국산이라 그런지, 끈적끈적하고 질긴데다가 음흉한 구석까지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이 나라는 대문을 활짝 열고 ‘우한폐렴’[武漢肺炎]을 맞아드린 격이 됐었다. 뛔국에서
“들켰다. 튀어라!” 지난 세기(世紀)에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어느 소설가가 유명 정치인들에게 전보(電報)를 보냈다. 위 내용의 전보를 받은 당사자들은 갑자기 연락을 끊었단다. 누가 몇 명에게 전보를 보냈는지, 몇 명이 토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고. 비록 남의 나라 옛일이지만, 우리네 속담과 표현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 그리고... “뒤가 구리다” 그나마 저 시절의 영국 정치인들에게는 최소한의 양심은 살아있었나 보다. 어쨌든 자신의 잘못을 인정·후회하는 모양새가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시공(時空)으로 멀리 떨어진 이 시절, 이 나라에서는...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로 실현된다...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법 집행 권한을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 며칠 사이에 너무 유명해졌다. 말마따나 크게 떴다. 긴 침묵 뒤끝이라고 했다. 누구의 말씀인지 이 나라 ‘국민’ 대부분이 알게
미친 듯 외치기만 하면 평화가 도래한단다 재래식 무기로 핵을 당하겠다고 자신하는데 “유화는 불가피하게 전쟁으로 갈 수밖에...” 장맛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우산도 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무언가를 외친다고 가정해 보자. 그 모습을 쳐다보는 행인(行人)들의 표정은 어떠할까? 19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처럼 불리던 그 때 그 노래의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제는 비가 오는 종로 거리를 / 우산도 안 받고 혼자 걸었네 /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 장맛비와 폭탄은 엄연히 다르다고? 이 나라 ‘통일 전선(前線)’을 지휘하게 됐다는 양반네의 말씀이다.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평화를 외치는 사람만이 더 정의롭고 정당할 수 있다...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이야기를 할수록 우리는 더 강력하게 평화를 쏘아 올려야 한다...” 며칠 전 ‘통일 전선(前線)’ 지휘자 후보에 대한 인사 청문회로 잠시 되돌아가자. 탈북민 출신 의원께서 “사상 전향” 운운한데 대해, 그 후보를 편드는 무리가 ‘사상 검증’이 아니냐며 발끈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역시 그 탈북민 출신 의원이 뭔가 크게 착각했던 것 같
위선(僞善)의 정당화·미화가 일상인 시절에, 자유 수호와 자유통일의 진정한 의미 상기시켜 ‘親日’ 타령과 매도의 본질을 직시하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미투 사건을 보면서도 피해자에게 가해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4년간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 지속됐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화려한 장례절차가 진행됐다. 그것도 이 나라 ‘국민’(國民)들의 혈세(血稅)로... “친절한 원순씨라는 그의 별명처럼 서울시의 수장으로서, 시민들의 친구이자 소탈한 옆집 아저씨와 같은 시장으로 시민들을 위해 열정을 바쳐서 일을 해왔다...” “박 시장은 맑은 분이어서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박원순 시장님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님의 뜻을 기억하겠습니다.” 이 나라 ‘국민’들은 그 ‘추행’(醜行)도 그러려니와 더욱이 그 엄청난 ‘위선’(僞善)과 그 ‘위선’을 당연시하고 정당화, 나아가서 미화(美化)하려는 뻔뻔·교활함에 치솟는 분노를 어쩌지 못하고 있단다. 이런 가운데... 위대한 ‘호국(護國) 영웅’을 떠나보내게 되었다. 그가 가시는 길은 결코 화려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진정한 ‘명예’가 함께 하기에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