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작 우리 동네 호수공원을 산책하다 호수를 바라보며 무심히 생각에 잠겨 걷고 있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몇 번인가 발 끝에 밟히고, 소매 끝에 스치는 인연이 닿기도 하고, 돌부리에 걸려 몇 번인가 넘어지기도 하고, 몇 번인가는 발 끝에 채이기도 하면서 걸어간다. 그러다 보면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가슴 한쪽에 훵하니 가을 같은 바람만 스치운다. 숨소리조차 들리는 오솔길을 홀로 걸으며 숲속 벤치에 앉아 바스락 낙엽이 구르는 소리에 혼자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명상에 잠기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숲이 그냥 내게로 온다. 구름이 내게로 오고, 그리움도 내게로 온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겨우내 마른가지에 싹이 움트던 지난 봄, 우리의 갈증을 풀어주던 빗소리. 내리쬐던 불볕도 마다 않고 지켜내던 지난 여름, 내 안의 상처를 감싸안은 시원한 강바람. 자기의 모든 열정을 태워 열매를 맺는 가을, 추억을 흔들던 억새풀과 노을빛. 이렇게 하늘이 높은 가을날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를 낙엽에 담아 내게 보내 준다면 그래서 내가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을 타는 냄새를 좋아하는 당신, 가을 바람이 날 당신에게 데려다 준다면 가을을 잔에 타서 전하고 싶다
박재형 작 거실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봅니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그냥 힘이드네요. 70세 나이 때문일까? 마음이 어두워져가는 지금, 나이 먹었다는 말은 하고 싶지가 않다. 날이 따뜻해서 봄을 타는 걸까? 노곤하니 기운도 떨어지고 자꾸 감기는 눈은 영락없는 정말 별 수 없는 세월인가보다. 밖으로 나가 햇빛을 쬐면 좋아질까? 강변길을 따라 산책을 하면 좋아질까? 사람이 많이 다니는 시장이나 백화점에가서 아이쇼핑을 하면 좋아질까? 시장에 가서도 쇼핑을 하며 무엇을 사고 먹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같이 보내느냐가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마음 맞는 친구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왁작지껄한 좌판에 앉아 빈대떡과 막걸리에 목을 축이며 나누는 얘기 참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만, 그대와 함께 같이 보내는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그럼 쓸슬 나가볼까 싶은 생각은 들지만 막상 오늘은 공연히 한숨만 나오고 하품에 하루가 좀 그랬는데 재미있을 만한 뭐 좋은 일이 없을까? 역시 그대를 만나는게 훨씬 좋겠지? 그대와 함께 하면 날 위해 무언가 해 주고 싶어하는 당신의 배려로 편안하고 마음은 언제나 즐겁고 내 마음을 춥지않게 해 주는 그대는 언제
박재형 작 잠시 왔다가 스쳐가는 바람이려니 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내 마음에 가두고 머물 줄이야. 잊을 수 있다고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리움으로 아픔이 되었습니다. 함께 할 땐 몰랐는데 함께 한 시간들이 응어리로 남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남았습니다.
박재형 작 겨울바다에 갔었어요. 소리없이 일렁이는 바다는 눈부시게 반짝거렸어요. 바다가 끝나는 곳 그 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냥 차가운 바람을 맞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노년의 생을 바라보며 나는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세상을 대하고 이별을 할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지요. 난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온 세월 용서도 이해도 부족했던 시간, 언제나 자신에게만 너그러웠다. 바다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햇살과 비와 눈을 고스란히 받아주며 하늘과 바다를 잇고 말없이 일렁이고 있었어요. 나이를 먹고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이고 세월을 탓하지 않을 거예요. 뒤돌아보면 미련도 후회도 없었어요. 이제는 차가운 겨울 바람을 핑개로 더러는 사치스런 투정이나 할레요.
박재형 작 내가 어디까지 가고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하니 묻지 마세요. 빨리도 아니고 천천히도 아니고 쉬엄쉬엄도 아니고 하지만 늘 가고 있으니 주어진 시간 속에 가다가 보면은 어느 날 다달을 날이 있겠지요. 그렇다고 마음 졸이지도 말고 서둘지도 말고 쉬지도 말아요 주어진 삶 속에 주어진 생활 이어가다 보면 주어진 인연들을 나누기도 하고 비우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거기까지 가겠지요.
박재형 작 마음이 허전하고 사람이 몹시 그리운 날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 속에 내가 있어도 혼자처럼 누군가 그리운 날이 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리움에 발 아픈 줄도 모르고 거리를 헤맨 날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랑으로, 다가갈 수 없는 그리움에 말없이 가슴으로 울어본 날이 있습니다 달이 밝은데 네 얼굴이 자꾸만 겹쳐와 숨을 멈추고 너를 생각하는 날이 있습니다. 눈치없는 그리움, 시도 때도 모르고 외로운 마음은 마른가지 마냥 바스라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잠을 깨니 오늘이네요 어제도 오늘 내일도 오늘 맨날 맨날 오늘 오늘 세월은 가지 않고 오늘에 머물러 있네요 오늘이 하루 하루 펴쳐지니 영화 장면처럼 재미 있네요 인생살이는 오늘이 만든 하루살이 연극이네요 세월을 오늘 속에서 흐르네요 하루살이 오늘 김우현-명에교수
세월고개 세월고개 넘어오는 봄바람 꽃이되어 피어나더니 꽃샘바람 부니 꽃닢은 흙이 되어 세월고개 넘어간다 세월은 봄날을 싣고 바람 타고 구름 타고 세월고개 아리랑고개 넘어간다 세월은 발병도 안나네 작시 - 김우현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