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작 기도와 상념 가득한 절집에 초록 연잎과 연분홍 꽃이 피고 진다. 잎새에 허물을 벗는 잠자리, 날개를 떨은 영상은 안개처럼 흩어졌다. 씨줄과 날줄이 맞물리는 틈새에서 피조(被造)된 자아는 시공을 돌아 진실에 닿지 못하고 의문과 궁금증만 안은 채 모여졌다 헤어지는 명의 현상을 쫓는 허전한 시간의 연속이다. 세상은 늘 변하고 순환하고 흘러가는 세월속에 모두가 그러하거늘 품고 갈 인연도, 아쉬움을 남긴 인연도 햇살이 거두어 간 뜨락에 스쳐가는 바람일 뿐... 부처님의 법보(法寶)를 구음(謳吟)하는 구도자의 엄청난 위력의 말씀과 처마 끝 풍경소리는 절간의 여운으로 탑을 향한다 주)구음(謳吟) : 여러 사람의 입을 모아 칭송하여 노래함.
박재형 작 5월의 푸른 하늘을 봅니다. 구름이 산 허리에 걸려있고 초록이 시원합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들이 숲에 가득합니다. 가슴을 펴고 닫혀있던 마음을 열어 마음껏 심호흡을 하니 청량함이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이팝나무 꽃 고운 분 바르고 연두빛 사과꽃잎 섀도우를 펴 바르니 내가 5월입니다. 그리고 꽃잎 입술에 붉은색을 칠하니 나는 복사꽃으로 핍니다. 이제 흘러버린 시간, 연연함도 아쉬움도 말자. 귓가에 속삭임처럼 아른거리는 그리움이 남아 있는 한 난 여전히 푸른 5월입니다.
눈이 부시게 좋은 봄날 주위를 둘러보면 연둣빛은 물론 분홍빛 노란빛 하얀빛 예쁜 꽃들이 반긴다.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 문득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해가 바뀌어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서로 나 몰라라 잊혀져가는 세상 문득 보고싶고 안부를 묻고싶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그런 사람이 있다는게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가?
박재형 작 하얀 목련꽃이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차가운 듯 움추린 모습이 함초롬히 아름답습니다. 어느날 내게 봄은 사랑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과 예쁘고 정겨운 꽃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담장 옆 순박한 개나리 애잔한 그리움을 안겨주는 노란 꽃잎 산수유 차가운 눈속에서 떨어야 했고 그리움으로 아파하는 시간이 당신을 만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이제 숙명처럼 아름다움으로 잉태된 난 설움을 잊어버린 체사랑이란 이름으로 당신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박재형 작 한꺼번에 몰려나온 꽃망울이 함박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미 터진 꽃망울은 하늘을 덮었고 손바닥을 편 내 손위에 한송이 꽃으로 다시 핍니다. 바라보기에도 아름다운 모습, 연신 하얗게 웃는 당신은 너무도 천진스러워 내 마음은 새털처럼 가볍습니다. 파란 하늘과 구름까지 가린 흰 꽃잎은 겨우내 받은 설움도 잊은 채 봄 바람에 춤을 춥니다. 일렁이는 불빛을 받으며 하염없이 춤을 춥니다.
박재형 작 내 나이 스무살 첫사랑은 모든 것이 서툴렀다. 내 나이 스무살 첫사랑은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내 나이 스무살 첫사랑은 가슴도 얼굴도 늘 붉었다. 내 나이 예슨살 첫사랑은 보고픔과 기다림이다. 내 나이 일흔살 첫사랑은 망설임에 후회하는 그리움이다. 내 나이 여든살 첫사랑은 나이먹고 약해져서 외로움만 남는다.
박재형 작 공연히 마음이 분주해지는 겨울과 봄사이 야무진 목적도 촘촘하게 짜여진 계획도 없는 여정은 두렵지만 자유로움을 안다. 차창밖 풍경은 물내와 흙내로 가득하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빈밭, 숲속에도 부지런한 봄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겨우내 외롭던 산골에 냉이 향내가 가득하고 나물캐는 늙은 아낙의 어깨에 아지랭이가 핀다. 봄에 깨어나는 물소리 만큼 절절한 그녀의 삶이 바람이 꽃에게 속삭이는 봄의 설렘도 적막한 가슴일까? 앞산 양지바른 무덤위의 햇살이 애써 기억하지 않는 기억들을 떠 올리며 내 청춘의 실패를 되돌리려 속삭인다. 반뼘도 안되는 작고 여린꽃잎에게 손짓을 하며 바람은 말을 건넨다. 왠지 마음이 설레지 않느냐고? 무채색 강가에 봄비가 내리고 침묵된 시간이 차창에 어리여 오롯이 외로움, 나를 감싸면 새봄에 나는 돌아가 구석진 마음 한 곳에 고운 꽃 한송이를 피워보고 싶다. 그리고 반가운 누군가를 만나 활짝 웃고 싶다.
박재형 작 지붕위에 떨어져 처마밑으로 흐르는 빗소리에 뒤척이다 밤을 지샌 적이 있나요? 행선지를 정하지 않은 채 길을 나서 무작정 버스를 타고 떠난적이 있나요? 마른 풀 향기와 비릿한 물냄새가 흩어지는 9월의 마지막날 따가운 햇살에 숨죽이 듯 일렁이는 황금 나락의 들판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그리운 사람을 그려보지만 잊혀진 얼굴이 기억되지 않는 그리움으로 가슴 아려본 적 있나요? 가을비가 머리를 타고 눈을 적시고 내 가슴에 흐르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마음이 저미고 쓸쓸한 가을을 사랑하지만 아리한 기억들로 나를 잊어버린 적이 있나요? 오늘 고요하고 달무리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가을을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