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반격작전’연습은 접었다고 하던데... 70년 전 ‘북진통일’의 염원을 기억한다. 동네 양아치나 깡패가 싸움을 걸어서 주머닛돈을 빼앗으려고 할 때 어느 녀석을 선택할까? ① 싸움이 붙어도 이기지 않겠다고 먼저 말하는 녀석 ② 싸움이 붙으면 꼭 이길 거라며 덤벼보라고 대드는 녀석 두 녀석 모두 힘이 부족하면 어차피 얻어터지고 돈을 뺏기기 마련이라고? 물론 그렇긴 하다. 올해 전반기 ‘한미연합훈련’이 3월 8일 시작되었다. 18일까지 계속(?)된단다. 왜 ‘계속(?)’이라 했냐고? 주말은 제외라고 해서. 그런데... 이번 훈련 중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나 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8일부터 진행 중인 ‘한·미 연합훈련’ 지휘소를 전격 방문한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이 장관은 훈련 사흘째인 전날 서욱 국방부 장관과 함께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관할 ‘B1 벙커’를 찾아 군 장병들을 격려했다...” ‘군 장병 격려’라... 그게 주목적은 아닌 듯하다. 국방장관의 제안이었다니까, 나름 뻔하다. “군이 적군(敵軍)에 맞서 열심히 미군과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 자유통일을 향한 군의 모습을 잘 지켜봐 달라.” 이러기 위해서였을까? 분명 아니지 싶다. 내
‘땅’ 가진 분들 수난이 시작되었다는데... 이제 그 ‘그림 같은 집’은 사라질 듯 ‘아파트’가 판치는 ‘천박한 도시’가 대세? 스물다섯 차례 대책의 결과는 과연 어디로... “우리는 한강변에 아파트만 늘어서서 여기는 단가가 얼마, 몇 평짜리.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 지난해 여름, 당시 ‘그 당’ 대표께서 힘주어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그 놈의 아파트가 국민들의 속을 많이 썩이고 있다. ‘천박한 도시’를 떠나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살아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질 때도 된듯하다. 딱히 그래서 그런 거 같지는 않지만... “2년 전 멀쩡한 논을 갈아엎고 나무를 잔뜩 심어놨다... 이후에 주인이 찾아온 걸 한 번도 본 적 없다...” “[3월]5일 OO일보가 지역 부동산중개사무소 등과 함께 확인해본 결과, 이 4개 필지는 모두 사실상 맹지였다. 3개 필지는 도로에서 한참 떨어져 있었고, 나머지 1개 필지는 도로에서 그리 멀진 않지만 비닐하우스 등에 가로막혀 맹지나 다름없었다...” 요즘 관심이 폭증하고 있는 광명·시흥지구에 대해 각 언론에서 많은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토지와 주택을 다루는 공사(公社) 직원들이 땅을 조직적으로 사
오늘에 이르러... 부국강병 외면, 적(敵)의 선의(善意)만 살펴 국민 ‘편 가르기’로 구심점 잃어가는 리더십 왜국(倭國)에 징징대기 앞서 스스로 물어야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吾等은玆에我朝鮮의獨立國임과朝鮮人의自主民임을宣言하노라.此로써世界萬邦에告하야人類平等의大義를克明하며此로써子孫萬代에誥하야民族自存의正權을永有케하노라...” 1919년 3월 1일 우리의 선대(先代)는 나라의 ‘독립’을 선언했다. 왕(王)들과 그 언저리 양반들이 말아먹고 팔아넘긴 주권을 찾고자 백성(百姓)들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4반세기 동안 식민(植民)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선언’만 했을 뿐, 그 ‘선언’을 뒷받침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지’는 남아있었기에 비록 남의 힘을 빌렸지만 해방(解放)을 맞을 수 있었다. 해방이 곧 ‘독립’은 아니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독립’을 이뤘다. 비록 미완(未完)이고, 절반(折半)인 채였지만... 불세출(不世出)의 혁명가가 외교를 주도했다. 드디어 ‘국민’(國民)이 되었다. 그러나 그 ‘절반의 독립’마저도 빼앗길 위기를 맞았다. ‘인민’(人民)이 될 수 없기에, 맨주먹 붉은 피로 위기
부모형제 너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이번에는 ‘산책 귀순’이라고 했는데... ‘합의(合意) 주도 국방’의 실체 재확인? ‘북진’(北進) 결심은 이미 물 건너갔고... 오늘도 전후방(前後方) 각지에서 가족과 애인과 친구를 멀리한 채, 조국의 땅과 바다와 하늘을 지키고자 불철주야(不撤晝夜) 청춘을 태우고 있을 아들 딸 조카 손주들에게 감사와 성원을 보낸다. 그나마 자네들이 있기에 이 꼰대도 한가로이(?) 자판(字板)을 두드릴 수 있질 않는가.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 부모형제 너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지금도 병영(兵營)에서 널리 불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 나라 꼰대들은 어릴 적부터 듣고 부르던 노래다. 그러나... 불과 몇 해 전(前)부터 ‘나라 지키는’이 아니라, ‘합의(合意) 지키는’으로 바뀌었다고들 한다. 2018년 9월 19일이었다고 했다.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라고... 호사가(好事家)들은 북녘 ‘인민의 군대’는 뭔 짓을 해도 괜찮은데, 남녘 ‘국민의 군대’만은 꼭 지켜야 하는 금과옥조(
"남한 영상물 유입·유포는 최고 사형에 처하고, 시청은 기존 징역 5년에서 15년으로 강화했다... 영상물뿐 아니라 도서⋅노래⋅사진도 처벌 대상이고, '남조선 말투나 창법을 쓰면 2년의 노동교화형(징역)에 처한다'는 조항도 신설된 것으로 파악됐다…." 북녘에서 지난해 12월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들어있는 내용이라고 한다. 엊그제 이 나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됐다고 했다. 북녘 세습독재정권 유지·연장의 최대 관건적 요소는 두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주민들에 대한 '정보 통제' 아니겠는가. 자유의 숨결과 물결이 주민들 사이에 스며들면, 거짓과 위선으로 세워진 '백도혈통(百盜血統)'의 존재와 '최고 돈엄(豚嚴)'의 권위는 모래성 같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릴 테니까. 물론 저런 법이 없었던 시절에도 이런저런 폭압적 장치를 가동하여 외부로부터의 정보 유입과 주민들 사이의 정보 흐름을 막아왔지 않았던가. 특별히 '지난해 12월'에 제정한 이유가 무얼까? 흔히 '우연(偶然)의 일치(一致)'라는 말을 쓴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옛말도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들 한다. 이어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읊어대며,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저잣거리
"남이라는 글짜에 점 하나를 지우고 /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 님이라는 글짜에 점 하나만 찍으면 /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돈이라는 글짜에 받침 하나 바꾸면 / 돌이 되어버린 인생사…." 요즘 이 나라에서 유행가(流行歌)다 하면 트로트가 단연 대세라고 한다. 언뜻 떠오른 김에 가사 몇 마디를 적어봤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엊그제 아무개 일간신문에 어느 논객이 혼이 담긴 구라를 풀었다. "한국의 대통령은 왕(王)에 버금가는 권력이다." 이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하긴 흔히 있었던, 봐왔던 상황이라 크게 주목 받지도 못했지 싶다. 더불어민주당이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 경과보고서'를 국민의힘의 동의 없이 또다시 단독으로 채택했다... 지난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됐지만 임명이 강행됐고,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한 21대 국회 들어서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변창흠 국토교통부장관 등에 대한 청문보고서가 여당 단독으로 채택됐다." "불과 몇 시간 후에는…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5시 30분 박범계 법무부장관 임명안을 재가했다. 박 장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야당의 동의 없이 임명한 27번째 장관급
경제 실정(失政)은 돌림병으로 덮어버리고, ‘희망고문’과 재난지원금은 계속 중얼대지만...분노한 ‘국민’은 두 번 다시 속지 않을 텐데... 2020년에 OECD 모든 국가가 다 마이너스 성장을 했지만, 한국은 그래도 가장 선방해서 이른바 최상위권 성장률을 유지했다... 우리 한국은 올해 상반기 안으로 코로나 상황 이전 수준을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아무개 논객의 말마따나 “없었던 일”로 하는 게 낫지 싶었다는 ‘신년 기자회견’의 마무리 멘트였다. 말이야 그럴 듯하지만, 정작 피부에 와 닿은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그저 ‘정신승리’(精神勝利)와 ‘희망고문’(希望拷問)이라는 지적에 크게 어긋나질 않을 듯하다. 살림이 팍팍해진 요즈음을 겪으면서는 오히려 어느 경제학자의 지적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릴 수밖에 없다. “경제는 벼랑길을 걸어왔다. 경제성장률은 점점 하락하고, 소득분배는 악화됐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기업규제는 경제성장과 분배개선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자산 분배의 불평등이 커졌다. 팬데믹이 우리 사회의 취약 계층에 가장 큰 타격을 주면서 서민의 고통은 커졌다. 가계와 기업의
그러나 대공(對共)의 성벽은 이미 무너졌고... 과연 명예회복이 당장 이루어질 수 있나? 자유통일의 그날, 그들 역사는 부활할 것 “세월호 사고시 기무부대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때의 일을 사찰로 단죄하니 정말 안타깝다...” 그들 조직의 수장(首長)을 지냈던 한 장수(將帥)가 남긴 유언(遺言)의 일부다. 그리고 2년여가 흘러가고 있다. 『특히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기무사의 유가족 불법 사찰’ 의혹이 무혐의로 종결되자 법조계에서는 “억울한 죽음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전 사령관은 세월호 유가족 고소로 2018년 12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성훈)의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충성’(忠誠) ‘명예’(名譽)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그들의 영원한 지표(指標)였다. 충성... 조국, 즉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자유 대한민국에 대한 절대적인 열정이었다. 다른 설명이 허락되지 않는다. 명예... 불의를 용납하지도, 그것과 타협하지도 않겠다는 강고한 신념이었다. 썩은 고기를 탐하지 않는 맹수의 기개가 넘쳤다. 이 나라의 건국(建國) 즈음부터, 이어서 전란(戰亂)에 휩싸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