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권자는 ‘덜 나은 후보’ 때문에 판단을 흐릴까 — 시간 속 비교 기억의 효과 유권자는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믿지만, 실제 선택은 오랜 비교 경험과 기억의 누적 위에서 이뤄진다. 최근 Communications Psychology에 발표된 심리학 연구는 ‘열등한 제3의 선택지’가 판단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주며, 이 효과가 교육감 선거와 같은 공직 후보자 평가 상황에도 강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보이지 않아도 계속 영향을 주는 선택지 독일 함부르크 대학 콘스탄티노스 체토스 교수 연구팀은 가치가 서로 다른 코인 중 고가치 코인을 고르는 소비자 실험을 통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참가자들은 둘 또는 세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의도적으로 가치가 낮은 선택지(DV, 방해 가치)로 설정되었다. 놀랍게도 이 방해 가치가 단순히 함께 제시되기만 해도, 주요 선택지들(HV, 고가치 / LV, 저가치)에 대한 가치 평가가 평균 15% 이상 하락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효과가 이후 방해 가치가 화면에 보이지 않아도, 즉 실제 선택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학습 단계에서의 기억이 현재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한 번 형성된 ‘비교 구조’는 이후에도 인지적 틀로 남아 이후의 가치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소비자 행동 실험을 넘어서, 유권자가 교육감 후보자를 평가할 때도 과거 경험한 ‘비교 대상’이 장기적으로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후보자 평가, ‘기억 속 비교’로 이뤄진다 유권자의 판단은 현재 눈앞에 있는 정보보다 ‘이전에 접했던’ 비교 대상들에 의해 좌우된다. 가령, 유권자가 두 후보자 중 하나를 평가하려고 할 때, 과거에 인지했던 ‘열등한 후보’의 존재가 그 기준점을 바꿔놓을 수 있다. 특정 후보에 대한 판단이 ‘현재 눈앞에 있는 인물들’보다 과거에 등장했던 비교 대상들에 의해 바뀔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두 명의 유력 후보(HV, 고가치 / LV, 저가치)가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지도가 낮거나 정책이 불분명한 제3의 후보(DV, 방해가치)가 등장했을 때, 그 후보를 실제로 지지하지 않더라도 유권자의 비교 기준 자체가 흔들려 기존 후보들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다. 이 효과는 심지어 그 제3의 후보가 사라진 이후에도 지속된다. 이는 방해 후보가 사라진 이후에도 유권자의 판단 기준이 달라진 채로 유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에 따르면, 실험 참가자 중 43%는 ‘방해 가치’가 존재했을 때 더 나은 결정을 내렸지만, 37%는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 이처럼 제3의 후보는 단순히 득표를 분산시키는 존재를 넘어, 핵심 후보자들의 상대적 가치를 왜곡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선거 전략, “지금 보이는 것”보다 “이전에 봤던 것”이 중요 기존 선거 캠페인은 대부분 즉각적인 여론 반응과 이미지 전달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 연구는 유권자의 선택은 일시적인 정보보다 ‘축적된 비교 기억’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선거 전략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후보자와 공약에 대한 평가는 즉시적인 정보보다, 이전에 접했던 비교 경험의 누적에 더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단기적인 이슈 제기나 자극적 메시지보다는, 시간을 두고 유권자의 기억 속 비교 구조를 어떻게 형성하느냐가 중요하다. 예컨대 유력 후보가 본격적인 캠페인에 나서기 전, 유사한 성향의 후보가 다수 등장해 유권자에게 혼란을 준다면, 그 자체로 해당 후보의 상대적 위치가 약화될 수 있다. 이는 선거 직전에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더라도, 이미 형성된 비교 기억이 판단에 영향을 주는 상황을 설명한다. 따라서 후보자의 정책 메시지를 단번에 강하게 전달하는 대신, 장기간에 걸쳐 일관된 비교 구도를 형성하고, ‘상대 후보보다 낫다’는 인식을 반복적으로 심어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특히 이 구도는 제3 후보나 변죽을 울리는 인물이 일정 기간 등장했다 사라진 이후에도 유권자의 판단에 잔존 효과를 남길 수 있다. 무당층, ‘선택지 피로’의 상징 연구팀이 제안한 ‘순차적 이진 비교 모델’은 이러한 인지적 과정을 단순한 수치가 아닌 구조적 비교의 흐름으로 설명한다. 이처럼 유권자는 각 후보를 한 번에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비교를 반복하면서 주관적인 순위를 구성해나간다. 따라서 후보 간 비교 구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금 한국 정치의 중심 변수로 떠오른 무당층은, 어쩌면 이런 ‘시간적 비교 피로’의 산물일 수 있다. 반복적인 실망, 비교 구조 속에서 형성된 상대적 무가치 인식이 축적되며, 유권자들은 아예 선택을 유보하게 된다. 즉, 무당층은 단지 ‘결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 반복적인 비교 경험 속에서 판단 기준 자체가 불확실해진 유권자일 수 있다. 따라서 단기간의 강한 인상이나 홍보보다, 장기간에 걸친 일관된 비교 우위 형성이 더 설득력 있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들에게 단번의 메시지나 감정 호소는 충분하지 않다. 장기적이고 일관된 비교 구도 속에서, ‘기억될 만한 가치’로 자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 선택 과잉과 냉소를 극복하는 가장 인간적인 접근일 수 있다. 이제 정치도, 기억을 관리하는 시대다. 단기 이슈보다 긴 맥락이, 강한 메시지보다 반복된 비교 우위가 유권자의 손을 움직인다. [해설]지난 교육감 선거에서의 실제 사례 이러한 심리 효과는 실제 선거에서도 관찰된다. 지난 2024년 서울시교육감 보궐 선거에서는 진보 진영이 조기 단일화를 통해 후보를 일찍 확정한 반면, 보수 진영은 단일화가 비교적 늦게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갈등과 잡음이 있었다. 이로 인해 최종 단일화된 조전혁 후보는 이미 단일화 과정에서 다른 예비 후보들과의 비교 구도가 온전히 형성되어 후보의 가치가 하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단일화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성향의 군소 후보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유권자의 인식 구조를 흐렸고, 이는 조전혁 후보의 상대적 가치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단일화가 전략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형성된 비교 기억과 인식 구조가 유권자의 판단을 좌우하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더해서 조 후보는, ‘새로운 인물’로 등장한 정근식 후보(현 교육감)와는 달리, 극단적인 정치적 이력과 과거 낙선 경력이 유권자들의 기억에 남아있어 후보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Tohidi-Moghaddam, M., & Tsetsos, K. (2025). The timescale and direction of influence of a third inferior alternative in human value-learning. Communications Psychology, 3(1), 56.